영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화양연화(花樣年華)

빠선생 2022. 2. 24. 16:55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티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느랴 티스토리에 소홀했다. 한달만에 올리는 글은 영화 '화양연화' 리뷰이다. 2월 24일, 오늘 메가박스에서 화양연화 재상영이 시작되었다. 2020년 겨울에도 한차례 재상영이 있었지만, 그 때는 내가 화양연화를 보기 전이어서 아쉽게도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다. 너무 아쉬웠는데 다시 재상영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꼭 보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필 집에서 가장 먼 메가박스에서 하기도 하고, 시간도 아침아니면 저녁이라 고민이 조금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도 놓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전날 예매해버렸다. 방금 보고나서 바로 써보는 글.. 좀 횡설수설할 듯 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화양연화 (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화양연화 (2000)

2000년 10월 21일에 개봉한 영화 화양연화는 아비정전,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등 많은 명작을 만들어낸 왕가위 감독의 작품으로, 장만옥과 양조위가 주인공을 맡았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 주모운(차우)과 소려진(첸 부인)이 같은 날 옆집에 이사를 오게 되고, 주모운의 아내와 소려진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그 둘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다가 결국 주모운과 소려진이 사랑에 빠져버리고 마는 이야기이다. 이영화는 워낙 유명하다보니 나도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던 영화였다. 화양연화라는 제목과 대략적인 줄거리 정도만. 줄거리만 들었을 때는 그냥 뻔한 불륜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다가 작년 이맘때쯤 왓챠 3개월 이용권을 끊고 돈이 아까워 볼 영화를 찾다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리마스터링되어 올라와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가장 유명했고, 보고싶었던 '중경삼림'을 본 뒤 '해피투게더','화양연화','2046','타락천사' 등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죄다 보기 시작했다. 나의 뒷북 성향 탓인지 '중경삼림'이나 '해피투게더'는 볼 때는 별 감흥 없다가 며칠 지난뒤에 OST만 반복해서 들으면서 뒤늦게 영화에 빠져살았었는데, '화양연화'는 아니었다. 보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뛰어난 미장셴을 자랑하지만, 최고는 '화양연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모든 장면이 눈을 뗄 수 없게 아름다웠다. 가본적도, 잘 알지도 못하는 60년대 홍콩을 그리워하게 만들었고, 화려한 배경속의 더 화려한 두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에 정신 못차리게 했다. 틈만 나면 장만옥과 양조위가 번갈아가며 얼굴공격을 해대는 탓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중경삼림','해피투게더'에서도 양조위 배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팬이 되게 한 영화는 '화양연화' 였던 것 같다. 항상 차려입는 수트, 한 올 흐트러짐 없는 머리, 그리고 양조위의 필살기 눈빛. 보는 내내 양조위가 쳐다보면 뭔가... 투시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를 다 꿰뚫어보고 있는 거 같은..? 그리고 장만옥은 사실 이름만 들어봤지 얼굴도 잘 몰랐었다. 엄청 유명하고 아름다운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예쁘다..라는 말로도 잘 표현이 안되는 미모. '아비정전'에서도 장만옥을 봤지만, 장만옥도 '화양연화'에서의 모습이 가장 빛났다고 생각한다. 스타일링 하는데 6~8시간이 걸렸다는 풍성한 머리와 딱 맞는 치파오. 고급스럽고 우아한, 그렇지만 어딘가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면이 숨어있는 소려진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장만옥은 낮은 목소리가 참 매력적인 것 같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뭔가 고급져보인달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마음의 준비를 하자며 이별 연습을 해보는 두사람.. 연기인걸 알지만 차우가 떠나가자 애써 참던 눈물을 터뜨리는 소려진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화면이 암전되었다가 다시 나타나 두사람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분명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고, 이뤄져서도 안되는 사랑이지만 왜이렇게 응원하게 되고 마음이 아픈건지.. 끝까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머뭇대다가 끝나버린게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모든 상황적인 부분들이 두 사람을 적극적이지 못하게 만들었겠지. 게다가 본인의 감정을 잘 알아채지도, 본인에게 솔직하지도 못했으니까. 두 사람은 정확히 언제쯤부터 서로를 사랑하게 된 걸까? 방구석 1열에서 본 유튜버 '거의 없다'님의 리뷰에서 '몸을 다 적신 빗물 중에 어떤 빗방울이 제일 처음 닿았는지는 모른다'라는 식의 멘트를 들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때문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몰랐겠지.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아챘더라도 그래서는 안됐기에 계속 부정하고 밀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 사라질수 있나? 결국 아무리 현실을 부정해봤자 자신의 감정은 어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차우가 첸부인을 위해 떠나기로 결심한게 아닐까. 아니면 소심했던 차우의 도피였을지도.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남긴 '티켓 한장이 더 있다면 나와 함께 갈래요?'라는 말도 참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끝내 대답하지 못한 소려진.. 순간의 머뭇거림이 많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항상 이렇게 행복했다면..ㅠ

그리고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하는 스킨십이라고는 손잡기, 포옹 밖에 없다. 그 어떤 노골적인 스킨십 장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놓고 야한 장면을 보여주는 다른 영화들보다도 더욱 긴장감이 넘쳤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두사람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어떤 섹슈얼적인 장면이 없어도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연기도, 연출도 모두 대놓고 시원하게 보여주는게 더 편할텐데, 절제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게 정말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보는 관객들은 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나는 서사를 담백하고 깔끔하게, 너무 감정을 많이 보여주지 않는 영화를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이유도 뻔한 시한부 소재를 담백하게 그려냈기 때문이고,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을 좋아하는 것도 그 둘 사이의 감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은 분명 사랑하고 있지만 그걸 얘네 둘이 좋아한대! 라고 보여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눈빛으로 다 말해주니까 알아채는 것일뿐. 아마도 이 영화가 그냥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키스신이나 배드신이 나오거나 그랬다면.. 이만큼의 명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싶다. 원래 촬영을 했다고도 들었는데, 넣지 않은게 신의 한수 인듯..

마지막에는 차우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가서 구멍에다가 자신의 비밀을 모두 말하고 그 구멍을 흙으로 막고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 말하고 나서 차우는 후련했을까. 원래는 이런 엔딩이 아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끝을 냈다고 하는데 나는 참 마음에 드는 엔딩이었다. 내심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이 한 번쯤은 만나면 안되나라는 생각을 계속 하기는 했지만, 못만나고 영원히 그리워만 하면서 끝나는 엔딩이 더 여운이 깊은 것 같다. 그런데... 화양연화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 '2046'에서도 양조위가 같은 차우라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거기서의 차우는 내가 알던 차우와 너무 거리가 멀어서ㅋㅋ 너무 캐붕이었다... 원래 아내에게도 자상하던, 소려진을 위해 배려하고 떠나간 순정파 남자가 갑자기 아무 여자나 다 꼬시고 다니는 바람둥이가 되어버리다니.... 그래서 그냥 '2046' 생각 안하고 보는게 더 좋은 것 같다...ㅎ 어쨌거나 거의 1년만에 다시 극장에서 본 '화양연화'.. 바보같이 안경을 안끼고 봐서 좀 흐릿하게 보긴 했다만 영화관 사운드로 그 OST들을 들으니 너무 좋았다. 다음에 다른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다시 재상영한다면 그때도 보러가고 싶다.